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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下代 遣唐國學留學生의 파견과 그 역사적 의미
초록
신라 하대 견당국학유학생들은 대부분 관비유학생이며 신분은 거의가 육두품이 었다. 신라의 최고 통치자인 왕은 육두품 출신의 인물을 당에 국학유학생으로 파견 하였는데, 그 의도는 왕권을 보좌하고 지지할 수 있는 인물들을 키우기 위한 것이 었다. 따라서 국왕이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림 이 없다. 더 나아가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이들의 학문적인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의 또 다른 의도는 당시 국제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 속에서 신라는 당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을 벌였다. 특히 발해와는 군사적인 대립뿐만 아니 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경쟁을 하였는데, 신라에서 보낸 견당국학유학생의 숫자 가 발해에서 파견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그 숫자가 현저하게 다른 것도 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왕의 의도와는 달리 육두품 견당국학유학생들은 唐의 科擧制에 의한 立身 出世의 법을 경험하고 신분적 제약이 없는 곳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결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결과 신라로 돌아와서는 진골과의 신분 차에서 오는 사회적 제약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받은 대우가 문한관 이나 지방관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더 나아가 眞聖王代 이후에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워지자 그들은 체제를 수 호하기 보다는 骨品制度 자체를 해체하는 길로 나아간 것이다. 견당국학유학생들 은 신라정부보다는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 는 後百濟나 高麗王朝에 새로운 관료로 등용되기도 하였다. 신라 왕실에서 파견한 견당국학유학생들은 왕실의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신라 사회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의 디딤돌 역할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키워드
- 제목
- 新羅 下代 遣唐國學留學生의 파견과 그 역사적 의미
- 제목 (타언어)
- Sending Students to Tang in the Late Shilla and its Historical Understanding
- 저자
- 조범환
- 발행일
- 2009-06
- 저널명
- 서강인문논총
- 호
- 25
- 페이지
- 241 ~ 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