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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흑룡강원정(나선정벌)을 전하는 초기 자료는 원정군 사령관 신류의 진중일기 『북정록』과 허구성이 다분한 작자미상의 『북정일록』으로 대별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흑룡강원정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북정일록』이었다. 남인계열 무장 신류의 『북정록』이 외부에 유포되지 않은 까닭은 흑룡강원정을 보는 당대의 시각이 매우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오랑캐’ 청을 겨냥한 북벌론이 조야를 휩쓸던 효종 때, 정작 북벌은 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 청의 지휘를 받아 출정한 흑룡강원정은 조선에게 치유하기 힘든 아픈 상처였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인식은 북벌론이 사실상 그 시의성을 상실한 1690년대 벽두에 숙종이 신류를 위해 직접 지은 賜祭文을 통해 긍정적 기억으로 180도 바뀌었다. 흑룡강원정의 기억에서 청의 존재를 크게 희석시키고 그것을 조선 스스로의 전역으로 바꿈으로써, 북쪽의 오랑캐를 쳤다는 북벌의 가시적 성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갑술환국(1694)을 계기로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이 재집권했는데, 서인에는 당시 ‘영고탑회귀설’과 맞물려 북변에 대해 큰 관심을 두던 인물이 많았다. 『북정일록』 같은 위서 또는 소설이 탄생 비밀은 이런 환경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원정의 주인공을 신류에서 배시황으로 바꾸고, 무공을 오로지 배시황에게 돌린 점은 『북정일록』의 저자가 서인계열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 글에서는 서인 및 소론의 거두이자,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영고탑 일대의 정확한 정보에 큰 관심을 기울인 南九萬이 『북정일록』의 집필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18세기 전반 무렵에 탄생한 『북정일록』은 이후 李瀷이나 李圭景 같은 대학자가 주요 자료로 소개함으로써, 흑룡강원정의 전말을 전해주는 역사 자료로 『북정록』을 대신하여 자리를 굳혀갔다.
키워드
- 제목
- 위서와 소설 사이: 17세기 『北征錄』을 통해 본 『北征日錄』
- 제목 (타언어)
- Between Fiction and Psudograph: An Analysis of Pukchŏng illok through Pukchŏngnok in the 1600s and 1700s
- 저자
- 계승범
- 발행일
- 2017-12
- 저널명
- 서강인문논총
- 호
- 50
- 페이지
- 39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