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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良志使錫’ 試論-양지의 남방도래 가능성에 대하여-
초록
양지는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조각가로서 주목을 받았다. 양지의 출신과 그 조상을 모른다는 『삼국유사』 「양지사석」조의 기록은 양지가 서역 출신이라는 추정으로 이어졌다. 양지의 전칭작들이 삼국시대 신라에서는 보기 드문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다. 본고는 양지 당대 승려들의 왕래 교통로와 양지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사천왕사 및 석장사 유물, 「양지사석」조에 보이는 소승불교적인 특징을 검토하여 양지와 그의 예술이 서역이 아니라 남방에 기원을 두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양지가 활동했을 당시 당의 정세로는 서역과 신라와의 왕래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중국에서 인도로 간 구법승들이 7세기 중엽부터 해로를 이용하는 경우가 급증한 것을 봐도 오히려 해로의 안전성이 부각되던 시기였으며, 중국을 거쳐 신라로 왔다하더라도 남방해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사천왕사지 출토 채유신장상과 석장사지 출토품들은 고운 흙을 빚어 틀로 성형했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인도에서 기원하여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중국으로 전해진 방식이다. 「양지사석」조에 의하면 사람들이 양지의 작업을 돕기 위해 노래를 부르며 흙을 날라 자신의 공덕을 쌓으려고 했다. 개인의 선업과 공덕을 쌓거나 석장을 이용해 탁발을 하는 행위는 남전(南傳) 불교에서 중시되는 일이다. 본고는 신장상의 양식적 특징보다는 틀을 이용한 성형 방법, 봉헌판처럼 탑과 상을 같이 배치하는 구성 형식을 보여주는 탑상전, 풍요를 부르며 공덕을 쌓기 위해 했던 행위에 주목하여 양지가 남방에서 왔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는 기존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불교의 남전루트에 주의를 환기시키는데 의의가 있다.
키워드
- 제목
- ‘良志使錫’ 試論-양지의 남방도래 가능성에 대하여-
- 제목 (타언어)
- A Reassessment of Yangji’s Origin in Samgukyusa
- 저자
- 강희정
- 발행일
- 2015-08
- 저널명
- 서강인문논총
- 호
- 43
- 페이지
- 121 ~ 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