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The Two ways of Remembering Death in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ed on the Change of Meaning in the Places of the Dead at Yong-san

초록

이 논문은 일제 식민지기 용산의 사자공간을 중심으로, 근대의 죽음 인식에 영향을 미쳤던 다양한 요소를 살펴보았다. 일제 식민지기 용산에 있었던 사자공간은 맥락에 따라 상반되는 취급을 받았다. ‘뿌리 없는 자들’ 혹은 ‘가지지 못한 자들’이 매장되었던 이태원 공동묘지는 결국 도시의 확대와 함께 외곽으로 밀려나야만 했다. 공동묘지를 밀어내는 주된 힘은 결국 ‘돈’이었지만, 조선의 사자공간에 대한 식민자의 인식 또한 영향을 미쳤다. 도시에서 사자공간은 살아있는 자들의 공간과 훨씬 더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예전에는 적당한 거리였던 것이 식민지 도시에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거리가 된 것이다. 물론 쫓겨난 대부분의 사자는 피식민자였고, 그곳에 들어와 살 자들은 식민자였다. 식민지 내 권력의 일방적인 불균형은 사자공간의 추방을 더욱 노골적이고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용산의 모든 사자공간이 밀려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군국주의 체제 하에서, 전쟁과 관련된 사자공간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처음 일제의 군부대가 용산에 자리 잡을 때, 군부대는 하나의 독립된 사회처럼 존재해야 했으므로 사자공간 또한 필수 시설 중의 하나로 마련되었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되자, 도심 내의 사자공간은 숭배의 공간이 되었고 심지어 죽은 자의 시신이나 유해가 없다고 해도 ‘신민됨’을 확인하는 공간이 되었다. 죽음의 공간을 도외시하거나 가치 없는 것, 혹은 터부로 취급하면서도 국가에 관련된 죽음은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이 모순된 현상은 근대 도시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근대적’ 현상은 식민지 사회, 그리고 용산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노골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다. 도시의 사자공간이야말로 그곳을 살아가는 이들의 ‘정치’가 반영된 공간이며, 죽은 자를 기억하는 방식이 바로 그 정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는 것을 용산 사자공간의 역사가 보여준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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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식민지 조선에서 죽음을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제목 (타언어)
The Two ways of Remembering Death in Japanese Colonial Period : Focused on the Change of Meaning in the Places of the Dead at Yong-san
저자
정일영
DOI
10.22827/seoul.2019..101.006
발행일
2019-02
저널명
서울과 역사
101
페이지
229 ~ 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