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세기中國의〈降魔〉敍事와成道의이해

Defeating Mara and the Enlightenment: The Chinese Understanding of Shakyamuni’s Path to Buddhahood in the 5th-6th Centuries

초록

동아시아의 고대 불교조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로 降魔觸地印佛坐像의 기원과 전래에 관한 문제를 들 수 있다. 성도의 바로 그 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석가모니의 再現은 涅槃과함께 불교의 精髓를 상징하는 핵심적인 주제이다. 그러면〈항마〉서사에서 비롯된 촉지인 불좌상이유행하기 이전 단계에는 석가모니의 성도를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했는가? 촉지인 불좌상이 조성되기 이전인 5-6세기 중국에서 석가모니의 항마장면을 묘사한 예는 막고굴과 운강석굴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면〈항마〉서사는 5-6세기 중국에서 어떤 식으로 이해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가? 당시중국인들이 성도에 큰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항마의 대상이 되는‘魔’라는 존재가 중국인들에게생소했으리라고 추측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마’의 개념을 일반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는상당한시간이요구되었을가능성이있었다고판단된다. 또한『山海經』,『 淮南子』,『 世說新語』등을통해 봤을 때, 전통적인 중국의 사고 체계에서 석가모니가 성도를 통한 寂滅로 불타가 되었다는 사실은 이해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보다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서의석가모니에 관한 인식이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하였다. 인간이 깨달음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하는‘魔’의 존재와 그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었던 중국인들은 자신들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항마를 이해하고자 했다. 불타 석가모니는‘神’적 존재로 떠받들어졌지만 그에 대한 이해는 출생부터 남다른 인간으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한역경전이 아니라당시남조의지식인들이썼던글에서잘드러난다.『 牟子』와『魏書』「釋老志」에서볼수있듯이남북조시대 漢族지식인의 글은 탄생과 열반에 주안점을 두었으며, 성도와 관련되는 사건으로서의‘항마’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太安元年銘佛坐像과 皇興5年銘交脚像, 杜延和關阿娥合邑造像碑등에는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탄생하는 장면, 용이 갓 태어난 태자를 씻겨주는 장면이 조각되었다. 이처럼 불교조각의 주제로 탄생과 구룡관정을 즐겨 묘사한 것은 석가모니의 생애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사건이 바로 이‘탄생’이었음을 시사한다. 불교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사람들도 석가모니가 깨달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기 보다는 자신들이 마땅히 도달해야할 수행의 목표이자 댓가로서의‘성도’에 더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인다. 막고굴과 운강석굴, 비상등을 보면 성도를 항마와 결부시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항마의 시각적 형상화가 대중들에게설득력이별로없다고판단했으리라고생각된다.‘ 魔’와‘佛陀’에대한인식이부족했던이시기중국에서항마성도는신앙대중들과소통하기쉽지않았고, 미술로도즐겨표현되기어려웠다.

키워드

항마(Defeating Mara)마왕(Mara King)성도(Enlightenment)탄생(Birth of Buddha)佛傳敍事(Buddhist Narratives)
제목
5-6세기中國의〈降魔〉敍事와成道의이해
제목 (타언어)
Defeating Mara and the Enlightenment: The Chinese Understanding of Shakyamuni’s Path to Buddhahood in the 5th-6th Centuries
저자
강희정
DOI
10.31065/ahak.266.266.201006.001
발행일
2010-06
저널명
미술사학연구
266
266
페이지
5 ~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