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당 고구려 유민 환관 高延福 묘지명의 새로운 검토

An Analysis of the Epitaph of Go Yeon-bok,a Tang Dynasty Koguryeo Remnant

초록

이 논문은 재당 고구려 유민 고연복의 묘지명과 신도비를 통해 그의 일생과 가족 관계를 복원해 본 것이다. 그는 어린 시절 당에 끌려가 뜻하지 않게 환관이 되었다. 환관으로 활동하는 중에 재능이 출중한 환관 고력사를 양아들로 삼았고, 아들이 황제 현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는 것을 발판으로 하여 환관으로서 오를 수 있는 높은 곳까지 올랐으며 영화롭게 살다가 죽었다. 고연복 묘지명과 관련하여 중국에서 처음으로 연구가 이루어졌고 국내에서도 그에 관한 짧은 글이 소개되었지만, 묘지명이나 신도비에 관한 자세한 검토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본고에서는 이러한 부분을 직시하고 면밀한 검토를 통하여 몇 가지 새로운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첫째로 고연복 묘지명은 필원에 의해 1781년 함녕의 농가에서 발견되었으며,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현재 회안시 초주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기존에는 발견 시점을 명확하게 밝히지 못하였으나, 본고에서 이와 같은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두었다. 둘째로 고연복의 묘지명과 신도비는 당대 유명한 유학자의 손에 의해서 찬술되었다. 손익과 장열에 의해 찬술된 묘지명과 신도비는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는 양아들인 고력사가 주도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셋째로 고연복의 출자와 관련하여 기존의 연구에서 밝힌 것과 같이 고구려 왕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주저되는 바가 적지 않다. 다만 묘지명에서 증조부와 조부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알려진 것으로 보아 일단 고구려 귀족의 후예로 추정해 보았다. 넷째로 고연복은 당에 들어온 이후 환관으로 출세하였고, 여러 환관이 그러하였듯이, 그도 혼인하였다. 또한 당시 환관이었던 고력사를 양아들로 두어 봉양을 받았으며 아들 덕분에 내시성의 장관직에까지 오를 수 있었다. 다섯째로 고연복은 63세로 내정리 사제에서 사망하였고, 다음 해에 경조부의 백록원 서쪽에 묻혔다. 그는 사제와 가까운 곳에 묻혔으며 그의 무덤 앞에는 신도비가 세워졌다. 환관 고연복의 묘지명을 통해 재당 고구려 유민의 한 모습을 복원할 수 있게 되었고, 앞으로 재당 고구려 유민을 연구하는 데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글의 의의가 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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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재당 고구려 유민 환관 高延福 묘지명의 새로운 검토
제목 (타언어)
An Analysis of the Epitaph of Go Yeon-bok,a Tang Dynasty Koguryeo Remnant
저자
조범환
발행일
2023-04
저널명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Korean History
43
페이지
5 ~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