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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羅 中代의 동아시아 政策과 對應
초록
이 글은 신라 중대의 동아시아 정책과 대응에 대하여 서술한 것이다. 서술한 결과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성덕왕 이전의 시기에 대외정책은, 특히 당에 대한 정책은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로 일관하였다. 신라는 당의 재침을 두려워하였으며 사신을 파견하는 것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였다. 반대로 신라의 일본에 대한 정책은 적극적이고 개방적이었다. 이는 후방 세력을 포섭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일본 또한 당의 침공을 두려워하여 신라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을 적절하게 이용하였다. 둘째로 성덕왕이 왕위를 계승한 이후 당과는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정책을 취하였는데 이는 효소왕 재위 말기에 등장한 발해가 주요한 변수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다. 이후 발해의 당 등주 침입으로 말미암아 신라는 군대를 파견하였고 그 결과 당으로부터 패강 이남의 땅을 확실하게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발해와는 적대적인 관계로 변화하였음은 이를 나위가 없다. 이와 같은 친당 및 반발해 정책은 당에서 안사의 난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신라의 대일정책도 당과 발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신라는 당을 등에 업고 있었기에 일본에 대하여 군자국의 위상을 드러냈고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 일본은 신라와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셋째로 경덕왕대 중반기에 당에서 발생한 안사의 난으로 말미암아 신라는 당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한편 발해와는 교류를 가지는 정책을 취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발해가 일본과 가까운 관계를 가지게 되자 신라는 일본과는 더욱 멀어지는 상황이 되었고 그에 대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신라 중대 시기에 추진된 동아시아 정책은 큰 틀에서 보면 당과 조공책봉을 통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발해와는 대립과 긴장 관계를 지속하다가 안사의 난 이후에는 교류를 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당나라와 발해로 말미암아 점차 불편한 관계가 되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해서 볼 때 서쪽에는 당이 위용을 과시하였지만 시간의 변화와 더불어 점차 약화되었고 발해와 대립에서 교류 관계로 바뀌었으나 이후 정치적인 대립도 없지 않았다. 일본은 당에 사신을 파견하면서 동아시아의 질서를 벗어난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하고자 하였기에 신라의 관심에서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었으나 상업적인 교류의 대상국으로서의 위치는 여전하였다.
키워드
- 제목
- 新羅 中代의 동아시아 政策과 對應
- 제목 (타언어)
- The East-asian Policy and Actions of Middle Age of the Silla
- 저자
- 조범환
- 발행일
- 2019-04
- 저널명
- 신라사학보
- 호
- 45
- 페이지
- 199 ~ 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