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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유이민의 백제 귀화와 정착 과정에 대한 검토-「陳法子墓誌銘」을 중심으로-
초록
이 논문은 최근 중국에서 발견된 진법자 묘지명을 통해 진법자의 먼 조상이 중국땅을 벗어나 한반도의 백제 지역에 정착하게 된 과정을 밝힌 것이다. 진법자의 먼 조상은 후한 말에 황건적의 난으로 혼란해지자 한반도로 건너와 마한을 맹주국으로 하는 어떤 소국에 머물렀다. 그들은 한군현인 낙랑군이나 대방군을 거치기보다는 곧바로 한반도로 건너왔는데 그렇게 한 이유는 당시 한군현의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웅진을 최종 정착지로 선택하게 되었다. 웅진 지역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대략 4세기 중엽에서 5세기 초로 비정되는데 그것은 수촌리 유적에서 발견되는 중국제 도자기를 통해서 짐작이 가능하다. 그리고 진법자의 조상은 이미 그곳에서 와서 정착하고 있던 중국인 유이민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 적어도 중국인 유인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함께 있으면서 계속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유이민들과도 유대관계를 유지하고 그들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갔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한성백제가 무너지고 웅진백제의 시작과 더불어 그들은 중앙 정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진법자의 고조부나 오대조의 경우 동성왕대에 출사를 하게 되었는데 진명이 바로 그러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출세를 가능하게 한 것은 당시 웅진 지역에서 유력자로 성장하였던 목씨 세력과 연결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목씨 세력은 웅진 천도를 주도한 세력의 하나로 알려져 있는데 진법자의 조상이 이들 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가짐으로써 정계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진법자의 조상 가운데는 중국 외교 사절단으로 참가하여 백제 귀족들의 중국문화에 대한 수요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그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키워드
- 제목
- 중국인 유이민의 백제 귀화와 정착 과정에 대한 검토-「陳法子墓誌銘」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A Study of Chinese immigrants’ Naturalization as Baekje People and Settlement Process in Baekje Region
- 저자
- 조범환
- 발행일
- 2015-04
- 저널명
-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Korean History
- 호
- 19
- 페이지
- 7 ~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