熊津都督 扶餘隆의 對新羅政策에 대한 검토

Examination on Policy of Buyeo Yung(扶餘隆), Dodok(都督) in Ungjin Commandery, against Silla

초록

이 글은 웅진도독으로 임명된 부여융이 웅진도독부의 백제 관료들과 어떻게 대신라정책을 추진하였으며 그것이 곧 백제의 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는가 그렇지 않으면 당의 사주를 받은 기미정책의 수행으로 끝나고 말았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검토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부여융은 665년 3월 무렵에 당 황제에 의해 웅진도독으로 임명되어 곧바로 백제 고토로 돌아왔다. 그리고 같은 해 8월에 신라 문무왕과 취리산에서 회맹을 맺었다. 이 회맹은 상징적인 의미가 매우 큰데, 회맹의 결과도 그렇지만 부여융은 신라 사람들에게 假王으로 자리매김 되었다는 사실이다. 가왕이라고는 하지만 지난날 소정방에 의해 당나라로 끌려가던 포로의 신세가 아닌 백제의 새로운 왕으로서의 위상을 신라에 드러냈다. 태산 봉선을 마치고 666년 5월에 유인원과 함께 백제 고토로 돌아온 그는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있어 백제 유민들을 안무하고 그들을 통하여 당군에게 보급품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에도 열중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유인원이 당으로 유배되자 당군을 이끌고 고구려 정벌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웅진도독으로서 확실한 지위를 굳히게 되었다. 부여융은 669년 이후 675년 당으로 돌아갈 때까지 약 6년 동안 신라와 군사적인 대결을 치루었으며 그러한 과정에서 일본에 사람을 보내 청병을 요청하였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그 모든 노력이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웅진도독으로서 모든 일을 주관하였던 것을 주목할 수 있다. 그는 웅진도독이면서 곧 백제의 왕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이중의 성격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그러니까 필요에 의해서는 당의 도움을 받고 때로는 독자적으로 활동하면서 대신라정책을 추진하였다고 할 수 있다. 부여융은 비록 웅진도독으로서 활동하였지만 속내는 마치 백제의 부흥운동을 위해 활동하는 것과 같은 태도를 드러내었던 것이다. 부여융은 스스로를 백제의 왕이라 생각하였지만 그것을 숨긴 채 웅진도독이라는 외피를 통하여 대신라정책을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의 대신라정책은 이중적인 성격이 동시에 작동되고 있었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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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熊津都督 扶餘隆의 對新羅政策에 대한 검토
제목 (타언어)
Examination on Policy of Buyeo Yung(扶餘隆), Dodok(都督) in Ungjin Commandery, against Silla
저자
조범환
DOI
10.35160/sjekh.2017.04.25.151
발행일
2017-04
저널명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Korean History
25
페이지
151 ~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