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국 시기 東南國學과 역사연구의 제도화

The Cultural Conservatism and Institutionalization of Historical Research in Republican China

초록

전통의 보존과 중화성의 재구성을 자신들의 사상적 과업으로 삼아 중국의 방식으로 중국의 문명을 중건(重建)하려 한 보수 사조가 존재했다. 이 사조는 남경과 항주 지역을 무대로 북경의 ‘계몽’ 사조와 사상적 문화적으로 경쟁하며 영향력을 확장해 갔다. 이 사조를 주도한 사람은 동남대학(東南大學), 중앙대학(中央大學)과 절강대학(浙江大學) 그리고 남경대학(南京大學)에서 보수적 학문·문화 활동을 전개한 국학자들이었다. 이들의 학문을 동남국학(東南國學)이라 부른다. 동남국학 역사연구의 학맥은 남경고등사범학교를 시작으로 동남대학을 거쳐 중앙대학 및 절강대학으로, 1949년 이후에는 대륙에서는 남경대학, 대만에서는 중앙대학 및 중국문화대학 등으로 이어졌다. 역사연구의 제도화-전문화, 학과체제 확립, 전문학회 등장- 역시 이들에 의해 뿌리 내렸다. 동남국학의 학문적 지향은 유이징이 대표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경에서 고힐강이 ‘신사학’을, 부사년이 ‘史料學派’를 이끌었다면 동남에서는 유이징이 그러한 역할을 했다. 顧頡剛과 傅斯年은 의고(疑古) 학풍을 선도했다. 반면 유이징은 신고(信古) 학풍을 정립했다. 그리하여 민국시대 역사학계는 남유북고(南劉北顧)의 형국이었다. 그러나 후세의 평가는 顧頡剛에 편중되어 유이징이 소홀히 다루어진 점이 적지 않다. 柳詒徵은 강절 지역의 박학 전통을 신고(信古) 학풍으로, 경세치용(經世致用=經世)의 전통을 학문에 임하는 20세기 학자의 근본 태도로 계승하게 하여 학문의 경세성-중화(문화)와 중국을 위한 복무, 학문의 사회적 기능 수행-을 동남국학 학술 활동의 시작과 끝으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민국시대 문화 보수주의는 전통의 긍정과 창조적 계승 그리고 문화 민족주의와 학문의 경세성 회복-당시로서는 학술보국이라는 형태로 나타남-을 핵심 가치로 추구하였다. 1920년대 이후 문화 보수주의는 유이징으로 대표되는 동남국학의 역사연구를 학문적 기반으로 삼아 발전하였다. 특히 신고 학풍은 동남국학의 역사연구가 전통 학문을 계승하면서 근대 학문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소명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또한 신고 즉 국고(國故)에 대한 신뢰는 전통의 발양과 재창조 그리고 그 영속이라는 동남국학의 사명에 도달하는 출발점이었다.

키워드

유이징(柳詒徵)신고(信古)의고(疑古)사지학파문화 보수주의동남국학Liu yi zhengthe theory of approving antiquitythe theory of doubting Antiquitythe school of history and geography learningCultural conservatismthe sinology of southeastern region
제목
민국 시기 東南國學과 역사연구의 제도화
제목 (타언어)
The Cultural Conservatism and Institutionalization of Historical Research in Republican China
저자
전인갑
발행일
2021-03
저널명
역사학보
249
페이지
293 ~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