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 中代 聖德王代의 政治的 動向과 王妃의 交替

Two Queens and King Seongdeok : A study of the Political Trends in Eighth-Century Silla

초록

본고는 신라 중대 성덕왕대의 정치사를 왕비의 출궁과 교체라는 사실을 통해 이해하고자 한 것이다. 그 결과 몇 가지 새로운 이해에 다다를 수 있었다. 첫째로 성덕왕은 국인들의 추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김원태가 병부령이면서 승부령으로 그의 즉위에 큰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였다. 이러한 혼인은 양자의 정치적인 의도가 깊이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의 힘의 균형이 깨어지거나 혹은 균형을 깨기 위한 노력이 생겨날 경우에는 바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소지를 잉태하고 있는 것이었다. 둘째로 성덕왕이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김원태 세력과 점차 멀어지게 되자 성정왕후는 태자의 책봉과 경제적인 지원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수용한 성덕왕은 태자를 책봉한 다음 약 3개월 후에 왕비와 헤어졌다. 그러나 태자를 두고 벌어질 일들을 염려한 성덕왕은 태자의 죽음에 깊이 개입하였고 그 결과 태자는 부자연스런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는 성정왕후의 출궁을 둘러싼 과거의 해석에서 벗어난 새로운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셋째로 성덕왕은 김순원의 지지를 통해 왕권을 강화할 수 있었으며 성정왕후와 헤어진 이후 그의 딸을 왕비로 들였다. 이러한 혼인도 결국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수밖에 없으며 승경의 태자 책봉 이후 곧바로 소덕왕후가 사망한 것도 당시의 정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추측할 수 있다. 이후 성덕왕이 더 이상 혼인을 하지 않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홀로 지냈다고 하는 것은 외척세력에서 벗어나 왕권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라 중대 성덕왕대를 기왕의 연구에서 밝혀진 것처럼 중대의 극성기로 파악하는 것은 쉽사리 수긍할 수 없다. 또한 중대 몰락의 시작으로 보는 것도 인정할 수 없다. 다만 성덕왕대는 새롭게 성장하는 외척세력을 억누르고 왕권을 신장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시기였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한다.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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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新羅 中代 聖德王代의 政治的 動向과 王妃의 交替
제목 (타언어)
Two Queens and King Seongdeok : A study of the Political Trends in Eighth-Century Silla
저자
조범환
발행일
2011-08
저널명
신라사학보
22
페이지
99 ~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