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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론
초록
이 글의 목표는 EN Ⅶ 3이 제기하는 두 개의 해석상의 난점에 초점을 맞추어 그것들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이해의 시점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중 첫 번째의 난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아크라시아론이 궁극적으로 『프로타고라스』에서의 소크라테스의 입장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 주는 당혹감과 관련되어 있다. 필자는 이러한 당혹감이 EN Ⅶ 2-3의 변증적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적 방법은 어떤 하나의 입장을 직선적으로 비판하거나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식의 평면적인 이해 방식으로는 포착될 수 없는 입체적 성격을 가진다. 그것은 주장들과 증거들이 아닌, 난제들과 견해들을 핵심적 구성요소로 가지며, 후자의 쌍 사이에는 전자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와 역동성이 존재한다. 아크라시아 문제를 다루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접근 방식을 정확히 이해하면,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대한 그의 수용이 곧 그것에 대한 전적인 동의가 아님이 분명해진다.이 글에서 다루어지는 두 번째의 난점은 아크라시아가 실천적 추론 중의 어떤 과정에서 발생하는가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전적 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추론의 소전제를 문제의 원천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이에 대해 실천적 추론의 전제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그 문제의 원천이라는 새로운 해석이 대두되었다. 하지만 이 두 해석에는 모두 심각한 문제점들이 존재한다. 필자는 이 딜레마 상황이 EN VI에서 제시되고 있는, 현명함 속에서 구현되는 지각의 특성과 연관해서 고찰됨으로써, 적어도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곳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지각을 어떤 기하학적 예와 관련해 구현되는 능력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바로 이 유비의 포인트가 무엇인가를 규명하고, 그것에 기대어 두 해석 간의 충돌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