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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白古通記』와 明淸 시기 ‘雲南史’ 서술
초록
이 연구는 『白古通記』가 雲南史學史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성격을 다시 확인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명 제국 초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고통기』 는 현전하지 않으며, 佚文을 통해서만 그 내용을 추정할 수 있다. 大理 지역의역사와 지리, 그리고 각종 설화 등을 포함한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운남 지역에 들어온 인도 아소카왕 아들을 시조로 하는 ‘백국’의 역사적 계보를 담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백고통기』의 역사인식 안에서 張氏의 白子國, 蒙氏의 南 詔國, 段氏의 大理國과 大理總管府는 차례로 이 ‘백국’을 계승하였다. 일부연구자는 이를 근거로 대리 지역 토착 ‘白人(僰人)’ 지식인들이 명 제국의 침공과 동화 정책에 맞서서 자신들의 史乘을 정리하여 『백고통기』를 저술하였으며, 아울러 이 『백고통기』의 전파와 유행이 후대 ‘백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고 주장한다. 이 글은 이러한 주장이 과장되었다고 여긴다. 아울러 명·청 시기 운남 史志 의 증가는 제국이라는 환경과 토착 지배엘리트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의 일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즉, 명·청 제국의 지배가 불러온 경제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이 현지 지식인에 의한 史志 출간을 자극하고, 그 과정에서 ‘토착 전승’의 채록과 문서화가 촉진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백고통기』 류의史乘도 채록되었을 뿐이다. 토착 ‘백인’ 지식인들이 ‘민족’적 감정에 의해 이들기록을 선택하였거나, 또 역으로 그것이 ‘민족’을 유지하는 도구가 되었다는증거는 없다. 당시 대리 지역의 비한족 지식인(혹은 縉紳)들은 家系 단위로 존재하였고, 각각의 이해 관계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물론 전설상의 ‘백자국’으로부터 남조국과 대리국, 그리고 단씨의 대리총관부로 이어지는‘국’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제국 시기 대리 지역에 ‘土司’는 존재하지 않았다. 명제국에 투항한 이 지역의 ‘家’들은 ‘土官’의형태로 가계의 관적 지위를 세습하면서 제국 지배에 협조하거나, 아예 적극적‘修身’을 통해 제국의 관리로 ‘입신양명’하기도 하였다. 제국과 제국의 주류였던 한인 관료들은 그들을 ‘白人’, ‘僰人’ 혹은 ‘民家’로 묶어서 통칭하였지만, 대리 지역 토착 엘리트들인 이들 ‘가’들은 전체를 아우르는 공통의 이해관계와정체성을 갖기 어려웠다.
키워드
- 제목
- 『白古通記』와 明淸 시기 ‘雲南史’ 서술
- 제목 (타언어)
- The Chronicle of Ancient Bai Kingdom (Baigutongji, 白古 通記) and the Rise of the “Yunnan History” during the Ming-Qing Period
- 저자
- 정면
- 발행일
- 2018-06
- 저널명
- 韓國史學史學報
- 호
- 37
- 페이지
- 101 ~ 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