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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임진왜란 때 명이 참전하고 조선의 내정에 간섭함에 따라 조선의 위상은 크게 낮아졌다. 조선은 작전・지휘권도 없이 일방적으로 명에게 휘둘렸으며, 강화협상 과정에서도 배제되었다. 세자의 책봉 주청도 전쟁 중에 세 번이나 거절되었고, 끝내 책봉을 받는 데 실패했다. 조명관계와 관련해 그동안 학계에서는 조선 국왕이 비록 명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고 책봉은 받았으나 내정간섭은 거의 없었으므로 조선은 자주국이었다는 해석이 통설처럼 되어 있었고, 따라서 상기한 사례들을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이런 통설에 이의를 제기하고, 전쟁 중의 사례들이 군신관계로 설명되는 조공책봉관계에서는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로 해석한다. 이를 위해 먼저 전쟁 중에 명이 일방적으로 행사한 작전·지휘권 문제를 살피되, 명과 조선 사이에 형성된 상하관계에, 특히 상명하복 관계에 중점을 두어 고찰한다. 다음에 조공책봉관계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책봉 문제를 다루되, 전쟁 중에 조선의 세자 책봉 주청을 명이 계속 거절한 사실을 조공책봉관계의 본질과 관련해 분석하고 해석한다. 이런 작업을 통해 조선과 명 사이에 형성된 조공책봉관계 곧 군신관계가 단지 의례적이거나 형식적인 관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그 함의 그대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밝힌다.
키워드
조공; 책봉; 광해군; 천자; 세자; 군신관계; 조공국; Tribute; Investiture; Prince Kwanghae; Son of Heaven; Crown Prince; Lord and Subject; Tributary State
- 제목
- 임진왜란 중 조명관계의 실상과 조공책봉관계의 본질
- 제목 (타언어)
- The Sino-Korean Relations and the Tribute System during the Hideyoshi Invasion of Korea, 1592-1598
- 저자
- 계승범
- 발행일
- 2012-12
- 저널명
- 韓國史學史學報
- 호
- 26
- 페이지
- 117 ~ 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