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전도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 -허태구,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소명출판, 2019)에 대한 종합비평-

The Chosǒn Surrender to the Manchu and the Question of Chosǒn Dynasty’s National Identity in the Early 1600s, Book Review Article
  • 계승범

초록

병자호란과 삼전도항복이 갖는 역사적 의미의 핵심은 조선왕조의 군부 곧 천자가 명[漢族中華]에서 청[夷狄野蠻]으로 바뀐 점이다. 비평의 대상인 이 책에서는 이를 君臣之義의 변화에 중점을 두어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문제의 본질은 충에 기초한 君臣有義라기보다는 효에 기초한 父子有親이라는 가치가 더 중요하였다. 충은 군주의 태도 여하에 따라 신하 입장에서도 관계를 끊고 떠날 수 있었지만, 효는 부모의 태도 여하나 주변상황에 관계없이 자식으로서는 무조건 지켜야 할 절대의리 곧 천륜이었기 때문이다. 충을 범하면 역적이나 간신이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끝나지만, 효를 범하면 인간이 아닌 금수의 세계로 전락하였다. 유교에서는 충과 효를 모두 강조했지만, 충과 효 사이에는 이런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였다. 이런 점에 주목해야, 광해군 때부터 시작하여 남한산성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 이후 조선시대 내내 崇明背淸 기조가 조선 정치․지성사의 주류를 형성한 연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군신지의에 기초한 사대의리는 정세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예교질서와 그 의례 또한 중화제국이 망하면 얼마든지 바뀔 수 있었다. 중화문명의 본산인 중원의 한족이 만주족의 천하지배를 현실로 수용하고 동참한 것은 그 좋은 사례이다. 漢人들은 황제와 군신지의[충]라는 이념적 부담만 있었으므로, 황실이 바뀔 때 불편함은 있지만 이념적․윤리적 부담은 별로 크지 않았다. 천명을 받아 새롭게 흥기한 새 황제를 천자로 인정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였다. 이에 비해, 17세기 전반 무렵의 조선은 절대로 그럴 수 없었다. 왜냐하면 군신지의[충] 외에도, 한족과는 달리 명 황제를 상대로 한 父子之義[효]라는 절대적 가치가 엄연하였기 때문이다. 이점이 바로 조선인이 한인보다도 더 철저하게 명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한, 심지어 조선왕조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죽음도 불사하며 지키고자 한 근본 이유였던 것이다. 또한 삼전도항복을 상대적 상황논리로 변명할 경우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양반지배구조의 붕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까지도 척화론의 이면에서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고찰 할 때, 당시 조선인들의 의식구조와 선택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키워드

rejecting peace talksfilial dutyMingQingKwanghaegunInjoSong soyǒlneutrality척화광해군인조송시열중립
제목
삼전도항복과 조선의 국가정체성 문제 -허태구, 『병자호란과 예, 그리고 중화』(소명출판, 2019)에 대한 종합비평-
제목 (타언어)
The Chosǒn Surrender to the Manchu and the Question of Chosǒn Dynasty’s National Identity in the Early 1600s, Book Review Article
저자
계승범
DOI
10.21568/CDHA.2019.12.91.305
발행일
2019-12
저널명
조선시대사학보
91
페이지
305 ~ 3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