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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26년에 건립된 파리 대모스크는 시기마다 서로 다른 기억의 대상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프랑스에 헌신한 무슬림을 추모하는 공간으로, 2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핍박받는 유대인의 은신처로, 그리고 21세기 초반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테러가 빈번할 때는 이슬람 원리주의에 맞서 ‘프랑스공화국’을 대변하는 공간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본 논문에서는 여러 시점의 기억 가운데 특히 나치 점령기 유대인 구출 장소로서 기능한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나치 점령기 동안 파리 대모스크가 유대인 피난처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그 실제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데 있다기보다, 이슬람과 유대인 관계의 일면을 당시의 정황과 그에 대한 후대의 기억을 통해 평가하려는 데 있다. 이슬람을 대표하는 파리 대모스크와 나치 점령기 곤경에 처한 유대인이 과연 프랑스 내 소수자로서 상호 유대 관계가 있었는지, 이에 대한 기억은 혹시 오늘날 곤경에 처한 프랑스 내 무슬림들이 과장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그 일면을 평가해 보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파리 대모스크의 유대인 구출이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할 수 있었던 상황인지, 즉 당시 파리 대모스크의 특성과 그 책임자 뱅가브리트의 유대인에 대한 입장에 대해 천착해 볼 것이다.
키워드
파리 대모스크; 1905년 정교분리법; 카두르 뱅가브리트; 유대인구출; 비시정부; 영화 <자유로운 사람들>; The Grand Mosque of Paris; 1905 law; Kaddour Benghabrit; Rescue of Jews; Vichy Government; <Free Men>
- 제목
- 나치 점령기 북아프리카 유대인과 파리 대모스크의 역할
- 제목 (타언어)
- North African Jews and the Role of the Grande Mosquée de Paris During the Nazi Occupation
- 저자
- 박단
- 발행일
- 2025-03
- 저널명
- 통합유럽연구
- 권
- 16
- 호
- 1
- 페이지
- 125 ~ 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