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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당 고구려 유이민 출신 환관 연구 -似先義逸 墓誌銘을 중심으로-
초록
이 논문은 사선의일 묘지명에 관해서 기존의 연구를 기반으로 하여 새롭게 검토한 것이다. 사선의일 묘지명의 실물을 볼 수는 없었으나 각종 사진 자료와 탁본등을 통하여 몇몇 글자는 새롭게 판독하였을 뿐만 아니라 번역 및 주석도 함께 진행하였다. 사선의일 묘지명에 드러난 그의 일생은 다음과 같다. 어린 나이에 환관이 되었고, 8명의 황제를 섬기는 가운데 몇 명의 황제와는 특별한 관계에 있기도 하였다. 문종대에는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였으나 무사히 넘겼으며 이후 환관으로서의 정치적 위상을 더욱 높아졌다. 또한 그는 환관임에도 부인이 있었고, 심지어 다섯 명의아들과 네 명의 딸도 두었다. 아들은 모두 정치 권력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고, 네명의 양녀도 그가 살았을 때 혼인을 시켰다. 그리고 영화롭게 살다가 65세에 죽음을 맞이하였고, 장안 근처에서 영원한 안식을 취하였다. 다음으로 사선의일이 사망하자 그의 다섯 명의 아들은 당대 문장가이며 비서소감인 왕식에게 비문 찬술을 요청하였고, 글씨는 태자통사사인인 장모가 썼다. 두사람이 환관 사선의일의 비문을 찬술하고 글씨를 쓴 것으로 볼 때 그의 아들들의영향력이 적지 않게 작용하였음을 헤아려 볼 수 있다. 특히 왕식은 과거 사선의일에게 정치적인 도움을 받았기에 더더욱 묘지명 찬술에 힘을 보탰다. 무엇보다 사선의일 묘지명이 주목되는 이유는 그의 출자가 고구려계 유민과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당으로 이주한 고구려 유민의 후예를 연구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에 틀림이 없으며, 특히 만당 시기에도 고구려 유민의 후손이 황실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알려주고 있어 고구려 유민사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재당 고구려 유이민 출신 환관 연구 -似先義逸 墓誌銘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the Eunuch of Goguryeo's Refugees who Lived in the Tang Dynasty
- 저자
- 조범환
- 발행일
- 2024-04
- 저널명
- Society for the Study of Early Korean History
- 호
- 46
- 페이지
- 217 ~ 268